“술 취한 블랙아웃 상태, 준강제추행죄 성립될까? 대법원 판례 해석”

술 취한 블랙아웃 상태, 준강제추행죄 성립될까 대법원 판례 해석”

 

술에 취해 필름이 끊긴 상태에서 발생한 일…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건 동의하지 않았다는 의미일까요? 아니면 당시에는 동의했을 가능성도 있을까요? 블랙아웃 상태에서 벌어진 성범죄 의혹을 둘러싼 법적 논쟁이 대법원 판결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준강제추행죄의 해석에 중요한 변화가 생겼는데요, 오늘은 2021년 2월 4일 대법원에서 선고된 판례(2018도9781)를 통해 알코올성 블랙아웃과 준강제추행죄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알코올성 블랙아웃과 준강제추행죄: 사건의 시작

2017년 2월의 어느 새벽,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났습니다. 술자리 후 두 사람은 모텔로 향했고, 그곳에서 입맞춤과 신체 접촉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다음 날 아침, 피해자가 전날 밤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는 점이었죠. 소위 ‘필름이 끊겼다’고 표현하는 알코올성 블랙아웃 상태였던 겁니다.

 

피해자의 기억 상실을 인지한 피고인은 “피해자가 당시에는 의식이 있었고 모든 행동에 동의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는 “내가 그런 상황에 동의했을 리 없다”며 준강제추행 혐의로 고소를 진행했습니다. 이 사건은 결국 법정으로 이어졌고, 알코올로 인한 블랙아웃 상태가 법적으로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로 인정될 수 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되었습니다.

 

법적 쟁점: 블랙아웃은 심신상실인가?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법적 쟁점은 명확했습니다. 피해자의 알코올성 블랙아웃 상태가 준강제추행죄에서 말하는 ‘심신상실’ 상태에 해당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피고인의 유무죄를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형법 제299조에 따르면, 준강제추행죄는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추행한 경우’에 성립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피해자가 정상적인 판단 능력과 대응 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상태였는지 여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필름이 끊겼다”는 것과 “심신상실 상태였다”는 것은 같은 의미일까요? 필름이 끊겼다는 것은 사후적으로 기억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당시에 의식이 있었는지 여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이 미묘한 차이가 이번 사건의 핵심이었습니다.

 

원심 법원의 판단

원심 법원(하급심)은 CCTV 영상과 모텔 인터폰 통화 기록 등을 검토한 결과, 피해자가 완전한 심신상실 상태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영상에 따르면 피해자는 자력으로 걸어 다녔고, 인터폰 통화도 가능했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런 정황을 근거로 원심은 “피해자가 블랙아웃으로 기억은 없을지라도 당시에는 의식이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대법원의 새로운 해석

그러나 대법원은 이러한 원심 판단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사후적으로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만으로 당시 심신상실 상태가 아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명확히 밝혔습니다. 또한 알코올 섭취량, 피해자와 피고인의 관계, 사건 전후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대법원은 특히 “깊은 잠에 빠져 있거나 술·약물 등에 의해 일시적으로 의식을 잃은 상태라면 준강제추행죄에서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기존의 법적 해석을 확장한 중요한 판결이었습니다.

 

준강제추행죄의 보호법익: 소극적 성적 자기결정권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은 준강제추행죄의 보호법익이 ‘소극적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습니다. 즉, 모든 사람은 원치 않는 성적 행위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있으며, 이러한 권리는
심신상실 상태에서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소극적 성적 자기결정권’이란 무엇일까요? 이는 성적 행위에 ‘동의하지 않을 권리’를 의미합니다. 모든 사람은 성적 접촉에 대해 ‘No’라고 말할 권리가 있으며, 이 권리는 의식이 명료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보호받아야 합니다. 의식이 없거나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는 기본적으로 ‘No’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법원의 입장입니다.

 

심신상실 상태의 판단 기준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심신상실 상태를 판단하는 기준도 제시했습니다. 단순히 피해자가 기억하지 못한다는 진술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며,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알코올 섭취량과 음주 시간
  • 피해자의 평소 주량과 당시 신체 상태
  • 피해자와 피고인의 관계
  • 사건 전후 피해자의 행동
  • 객관적인 증거(CCTV, 통화 기록 등)

 

이러한 종합적 판단 없이 단순히 외형적인 행동만으로 피해자의 심신상실 여부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이는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는 중요한 법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알코올과 동의의 법적 관계

이번 판결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음주 후 성적 접촉’에 대한 중요한 법적 기준을 제시합니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성적 접촉이 과연 유효한 ‘동의’에 기반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죠.

 

음주 상태에서의 ‘동의’는 법적으로 유효한 동의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심각한 음주 상태, 특히 블랙아웃 상태에서는 유효한 동의를 할 수 있는 판단 능력이 결여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그 사람이 거부하지 않았으니 동의한 것”이라는 식의 해석이 법적으로 위험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적용과 시사점

이번 판결은 일상생활에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집니다. 음주 자리에서 만난 사람과의 성적 접촉이 법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것이죠. 특히 상대방이 과도하게 취한 상태라면, 그 사람이 외형적으로 동의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유효한 동의 능력이 없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술자리에서 만난 사람이 걸어 다니고 대화도 가능하지만 음주량이 과도하다면, 그 사람의 ‘동의’가 법적으로 유효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적 접촉이 이루어진다면, 추후에 준강제추행 혹은 준강간 혐의로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이 이번 판결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대법원 판결 이후의 법적 영향

이번 대법원 판결은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환송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이 사건만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유사한 사건들에 대한 법적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알코올성 블랙아웃 상태에서 발생한 성범죄 의혹 사건에서 피해자의 기억 상실이 단순히 면죄부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습니다. 또한 심신상실 상태를 판단할 때는 여러 정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향후 유사 사건의 수사와 재판에 중요한 지침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준강제추행죄에 대한 이해

이번 판결을 통해 우리는 준강제추행죄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형법 제299조에 따른 준강제추행죄는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추행한 경우’에 성립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상태와 그것을 인식한 가해자의 행위입니다.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고, 가해자가 이를 알면서도 그 상태를 이용했다면 준강제추행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이번 판결은 특히 알코올로 인한 블랙아웃 상태가 이러한 심신상실 상태에 해당할 수 있음을 명확히 했습니다.

 

기억의 상실과 동의 능력의 관계

또한 이번 판결은 ‘기억의 상실’과 ‘동의 능력’을 구분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사후적으로 기억이 없다는 것(블랙아웃)은 당시 의식이 있었는지 여부와는 별개의 문제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의 능력이 온전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알코올성 블랙아웃 상태에서의 성적 접촉은 항상 법적 위험을 내포하고 있으며, 진정한 동의는 상대방이 판단 능력을 온전히 가지고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점을 이번 판결이 재확인해 주었습니다.

 

마치며: 변화하는 성범죄 판단 기준

이번 대법원 판결은 알코올성 블랙아웃 상태에서 발생한 성범죄에 대한 중요한 법적 판단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단순히 피해자가 기억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심신상실 상태가 아니었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여러 정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이 판결은 우리 사회에 “술에 취했다고 해서 성적 자기결정권이 포기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성적 접촉은 항상 상대방의 명확한 동의하에 이루어져야 하며, 그 동의는 상대방이 판단 능력을 온전히 가지고 있을 때만 유효하다는 점을 법적으로 확인한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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