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성이 출근길 지하철에서 갑자기 낯선 이의 손길이 몸을 더듬는 느낌을 받습니다. 처음에는 착각인가 싶었지만, 곧 명백한 성추행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 순간의 충격과 공포, 그리고 그 후 시작된 법정 공방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지하철 내 성추행 사건을 넘어, 성범죄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재정립한 중요한 판례로 기록되었습니다.
경의중앙선에서 발생한 성추행 사건
2019년 1월 3일, 평범한 출근길이었습니다. 28세 여성이 경의중앙선 전동차에 탑승했을 때, 그녀는 이 날이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날이 될 줄 몰랐을 것입니다. 한 남성이 그녀의 치마 속으로 손을 넣어 성기 부분을 약 5분간 추행했습니다. 처음 느낌은 착각인가 싶었지만, 점점 노골적인 행동에 그녀는 결국 용기를 내어 즉각 항의했고, 피의자를 전동차 밖으로 끌어내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이 사건이 법정으로 이어지면서, 피해자의 진술이 과연 믿을 만한 것인지를 놓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여러분은 성추행을 당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바로 소리치고 항의해야 할까요, 아니면 충격과 당혹감에 잠시 얼어붙을 수도 있을까요?
1심과 2심의 엇갈린 판결
1심 법원은 피해자의 진술을 신뢰하여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2심인 원심은 놀라운 판단을 내립니다. 원심은 피해자가 “적극적 성격임에도 오랜 시간 추행을 방치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부인하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또한 피해자의 진술이 부분적으로 일관성이 없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부 내용이 추가되었다는 점도 신빙성을 의심하는 근거로 들었습니다.
과연 모든 성범죄 피해자는 동일한 방식으로 반응해야 할까요? 성격이 적극적이라면 반드시 즉각적인 대응을 해야만 진실된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피해자 진술 신빙성 판단의 핵심 쟁점
원심의 문제적 판단
2심 법원의 판단에는 몇 가지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원심은 피해자가 “적극적 성격”이라는 이유로, 약 5분간 추행당하는 동안 즉각 대응하지 않았다는 점을 의심했습니다. 또한 피해자의 진술 중 일부 세부사항이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했다는 이유로 전체 진술의 신빙성을 부인했습니다.
이는 마치 성범죄 피해자에게 “완벽한 피해자”의 역할을 요구하는 듯한 접근법입니다. 하지만 실제 성범죄 상황에서 피해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반응합니다. 공공장소에서의 당혹감, 혼란, 수치심, 때로는 얼어붙는 공포까지… 피해자의 반응은 하나로 정형화할 수 없습니다.
피해자의 해명과 대법원의 판단
사건의 피해자는 자신이 추행 초기에 즉각 대응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제시했습니다. 그녀는 생리대를 착용했기 때문에 초기 접촉을 즉각 인지하지 못했고, 약 30초 후에 더 노골적인 행위를 감지한 후 항의했다고 진술했습니다. 대법원은 이 설명이 경험칙상 충분히 합리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대법원은 피해자 진술의 핵심 부분(추행 방법, 시간, 항의 과정 등)이 일관되게 유지되었고, 피해자에게 허위 진술을 할 동기가 없다는 점을 중요하게 고려했습니다.
성범죄 피해자 진술 평가의 새로운 기준
대법원이 제시한 판단 기준
2021년 3월 11일,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환송하며 중요한 법리를 제시했습니다. 대법원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은 진술 내용의 핵심적 일관성, 경험칙에 비춘 합리성, 허위 진술 동기의 부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대법원이 “성범죄 피해자의 대처 방식은 개별적 상황에 따라 다양할 수 있으며, 이것만으로 진술의 신빙성이 단정적으로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이는 성범죄 피해자에게 ‘정형화된 반응’을 기대하는 관행에 제동을 건 중요한 판시입니다.
사소한 진술 변경과 신빙성 판단
또한 대법원은 “사소한 진술 번복”만으로 피해자 진술의 전체 신빙성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억의 세부사항이 변할 수 있고, 특히 충격적인 성범죄 상황에서는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기억하고 일관되게 진술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갑작스러운 충격적 상황을 겪은 후, 그 세부사항을 완벽하게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경험해 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교통사고나 갑작스러운 사건을 목격했을 때도 우리 기억은 충분히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지하철 성추행 사건의 법적 의미
자유심증주의의 한계 확인
이 판결은 형사재판에서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자유심증주의란 법원이 증거의 신빙성과 증명력을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다는 원칙이지만, 그 판단이 경험칙과 논리법칙에 반해서는 안 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원심은 피해자의 성격을 근거로 추행 사실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성범죄 피해자의 심리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접근법이 경험칙과 논리법칙에 반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적용된 법률
이 사건에는 다음과 같은 법률 조항이 적용되었습니다:
- 형법 제298조(강제추행): 폭행 또는 협박으로 추행한 자를 처벌하는 조항
-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피해자 진술의 증거능력): 피해자 진술의 증거적 가치 평가 기준 관련
일상에서의 교훈과 시사점
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성범죄 피해자의 진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이정표를 제시합니다. 성범죄 피해자들은 각자 다른 심리적 상태와 대처 방식을 가질 수 있으며, 이것이 그들의 진술 신빙성을 단정적으로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이 판결은 공공장소, 특히 지하철과 같은 혼잡한 공간에서 발생하는 성범죄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줍니다. 많은 피해자들이 순간적인 당혹감, 주변의 시선에 대한 의식, 확신이 서지 않는 상황에서의 혼란 등으로 즉각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범죄 진술 증명의 현실적 어려움과 법원의 역할
성범죄는 대부분 피해자와 가해자만 있는 상황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물리적 증거보다 진술의 신빙성이 더욱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원은 단순히 ‘완벽한 피해자’의 모습을 기대하기보다, 진술의 본질적 일관성과 합리성을 중심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성범죄 피해자의 진술을 평가할 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개별 상황의 맥락과 피해자의 심리 상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결론: 피해자 진술 평가의 새로운 기준
2020도15259 판결은 단순한 지하철 내 성추행 사건을 넘어,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 진술을 평가하는 방식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선례적 판결입니다. 대법원은 피해자의 성격이나 대응 방식보다, 진술의 핵심적 일관성과 경험칙에 비춘 합리성을 중심으로 신빙성을 판단해야 한다고 명확히 했습니다.
이 판결은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완벽한 피해자” 역할을 요구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개별 피해자의 상황과 심리 상태를 존중하는 법리를 확립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앞으로 유사한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평가할 때 중요한 참고 기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