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후 허벅지 쓰다듬기, 강제추행일까? 기습추행 판례 총정리
평범한 회식 자리에서 분위기가 무르익자 한 남성이 옆자리 여성 동료의 허벅지를 슬쩍 쓰다듬었습니다. 그 순간 여성은 당황했지만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 바로 항의하지 못했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이러한 신체 접촉이 단순한 친밀감의 표현일까요, 아니면 법적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성범죄일까요? 2019도15994 판결은 이러한 일상적 상황에 대한 중요한 법적 판단을 내렸습니다.
기습추행, 무엇이 문제였나?
창원의 한 직장 회식 자리. 노래방에서 분위기가 무르익은 가운데 한 남성이 여성 동료의 허벅지를 손으로 쓰다듬었습니다. 피해 여성은 그 순간 당황했지만 회식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고 즉각적인 거부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이 사건이 법정으로 넘어갔을 때, 1심 재판부(창원지법)는 피해자가 즉각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어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러한 판단을 뒤집었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은 ‘기습추행’의 성립 조건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리고 피해자의 즉각적인 거부 반응이 없었다는 것이 묵시적 동의로 해석될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대법원은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유죄 입장을 명확히 했습니다. 왜 이런 판단이 내려졌을까요?
강제추행과 기습추행, 어떻게 다른가?
강제추행의 법적 이해
형법 제298조에 따르면, 강제추행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자”를 처벌하는 죄입니다. 여기서 ‘추행’이란 일반인의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법원의 해석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강제추행죄의 ‘폭행’에는 상대방의 의사를 제압할 정도의 물리적 강제력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시했습니다. 단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가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기습추행’의 개념입니다.
기습추행의 성립 요건
기습추행이란 상대방이 미처 저항할 겨를도 없이 갑자기 추행행위를 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기습추행의 성립 요건을 명확히 했습니다.
- 폭행의 정도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면 충분
- 상대방의 의사를 완전히 제압할 필요 없음
- 힘의 세기는 중요하지 않음
- 피해자의 즉각적인 거부 의사 표현이 없어도 성립 가능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회식 자리에서 동료의 허벅지를 쓰다듬는 행위가 정말 범죄가 될 수 있을까요? 대법원은 이 질문에 명확히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피해자의 반응, 왜 중요하지 않은가?
즉각적 거부 표현의 의미
이 사건에서 원심 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린 주요 이유 중 하나는 피해자가 즉각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러한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현실에서 많은 성범죄 피해자들은 즉각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회식과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는 심리나 상급자와의 관계 악화에 대한 우려 때문에 바로 항의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사회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침묵은 동의가 아니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회식 분위기 등으로 인해 즉시 저항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를 묵시적 동의로 해석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는 ‘침묵은 동의’라는 오래된 관념을 법적으로 부정한 중요한 판단입니다.
실제로 많은 직장 내 성희롱이나 성추행 사건에서 피해자들은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불편한 신체 접촉을 당했을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당황했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이제 법원은 그런 상황에서의 침묵이 동의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판단했습니다.
법원의 판단 기준, 성인지감수성이란?
이 판결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점은 성인지감수성이라는 개념이 적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성인지감수성이란 성별 간 불평등한 권력관계와 사회문화적 맥락을 이해하고, 성범죄 피해자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는 관점을 말합니다.
대법원은 피해자의 진술을 평가할 때 일반적인 기준이 아닌, 성인지감수성을 바탕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즉, 피해자가 왜 즉각적으로 거부하지 못했는지, 왜 바로 신고하지 않았는지 등을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러한 접근법은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에게 “왜 바로 도망가지 않았니?” “왜 소리 지르지 않았니?”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부적절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모든 사람이 위기 상황에서 동일하게 반응하지는 않으며, 특히 권력 관계가 존재하는 직장과 같은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회식 자리에서의 신체 접촉, 어디까지 허용될까?
이 판결은 회식 자리에서의 신체 접촉에 대한 법적 기준을 명확히 제시했습니다. 상대방의 명시적 동의 없이 이루어지는 성적 의미가 있는 신체 접촉은 강제추행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이는 회식 문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난’이나 ‘친밀감의 표현’이라는 명목 하에 이루어지는 신체 접촉에 대한 경고입니다.
특히 직장 내 권력 관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주의해야 합니다. 상급자의 작은 신체 접촉이라도 하급자에게는 큰 부담과 수치심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식 자리에서도 상대방의 신체 경계를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이 판결은 전달하고 있습니다.
법적 결과와 시사점
최종 판결 결과
대법원은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창원지방법원으로 환송했습니다. 이는 허벅지를 쓰다듬은 행위가 명백한 기습추행에 해당한다는 판단이며, 환송 받은 법원은 대법원의 법리에 따라 유죄 판결을 내리게 됩니다.
형법 제298조에 따르면 강제추행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 개인의 처벌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의 성범죄에 대한 인식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판례가 되었습니다.
일상 속 기습추행 사례와 예방
이 판결을 통해 우리는 일상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기습추행의 범위가 넓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행위들도 상황에 따라 기습추행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 회식 자리에서의 허벅지나 어깨 등 신체 접촉
- 엘리베이터나 혼잡한 장소에서의 의도적 신체 접촉
- 업무 지도나 도움을 준다는 명목의 불필요한 신체 접촉
- ‘장난’이나 ‘친밀감 표현’이라는 명목의 원치 않는 접촉
이러한 행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항상 상대방의 명시적 동의를 구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합니다. “괜찮을 거야”라는 자의적 판단보다는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요?”라고 묻는 문화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결론: 변화하는 법의 해석과 사회적 인식
허벅지를 쓰다듬은 행위가 강제추행인지를 다룬 2019도15994 판결은 성범죄에 대한 사법부의 인식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이 판결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 기습추행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 행사만으로도 성립합니다.
- 피해자의 즉각적인 거부 의사 표현이 없더라도 강제추행이 성립할 수 있습니다.
- 피해자의 반응을 평가할 때는 사회문화적 맥락을 고려한 성인지감수성이 필요합니다.
- 직장 내 권력 관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의 신체 접촉은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이 판결은 단순히 한 사건의 유죄 여부를 넘어, 우리 사회의 성범죄에 대한 인식과 판단 기준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원치 않는 신체 접촉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법원도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직장 내 회식 문화와 대인 관계에서도 서로의 신체적 경계를 존중하는 문화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