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성범죄에서 피해자다움 불인정 판례 및 판단 기준 총정리

아동 성범죄에서 피해자다움 불인정 판례 및 판단 기준 총정리

 

법정 드라마나 뉴스에서 종종 접하게 되는 장면입니다. 성범죄 피해자의 진술이 신빙성을 의심받는 상황. “왜 그런 일을 당했는데 바로 신고하지 않았나요?” “왜 가해자를 피하지 않고 다시 만났나요?” 이런 질문들이 피해자를 향합니다. 특히 아동·청소년 성범죄 사건에서 이러한 ‘피해자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은 재판 과정에서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2020도8016 판례는 바로 이 ‘피해자다움’이라는 관념에 대한 법원의 중요한 판단을 담고 있습니다.

 

사건의 배경: 14세 소년과 ‘피해자다움’의 질문

14세 소년 A군은 어느 날 성인 B씨에게 성폭력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충격적인 일은 그 다음 날 일어났습니다. A군은 전날 강간을 당했던 B씨의 집을 스스로 찾아갔습니다. 이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나자 피고인 측은 곧바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진짜 피해자라면 가해자의 집을 다시 찾아갈 리가 없다”는 논리였죠.

 

이런 상황,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말 성폭력 피해자라면 가해자를 두려워하고 멀리 피해야 ‘정상적인’ 반응일까요? 법원은 이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피해자다움’이라는 고정관념에 일침을 가했습니다.

 

법정에서 맞붙은 ‘피해자다움’의 논쟁

피고인 측의 주장: “진짜 피해자가 맞나요?”

피고인 측은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피해자가 전날 강간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도 다음 날 스스로 피고인의 집을 찾아갔다는 것은 일반적인 피해자의 모습이 아니다.” 이를 근거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공격했습니다. 많은 성범죄 재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어 전략이죠.

 

검찰 측의 반박: “피해자의 행동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검찰은 피해자의 행동이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특히 피해자가 14세 소년이라는 점, 성범죄 피해자가 보이는 반응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성범죄 피해자, 특히 아동·청소년 피해자들은 혼란, 두려움, 의존성 등 복잡한 감정 상태에서 일반적인 기대와 다른 행동을 보일 수 있습니다.

 

대법원의 판단: “피해자다움은 없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획기적인 판단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명확하게 “피해자가 전날 강간을 당한 후 그 다음날 스스로 피고인의 집에 찾아갔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피해자의 행위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할 사정이 되지는 못한다”고 판시했습니다.

 

더 나아가 대법원은 피해자가 보이는 반응과 대응 방법은 매우 다양할 수 있으며, 가해자를 무서워하지 않거나 피하지 않고 가해자를 먼저 찾아가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피해자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중요한 판결이었습니다.

 

왜 피해자들은 ‘피해자답지 않게’ 행동할까?

심리적 복잡성: 트라우마의 다양한 반응

성폭력 피해자, 특히 아동·청소년 피해자들이 보이는 행동은 일반적인 기대와 다를 수 있습니다. 트라우마 전문가들은 피해자가 다음과 같은 다양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 불신과 부정: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인정하기 어려워 평소처럼 행동하려 함
  • 혼란과 모순된 감정: 특히 아동·청소년의 경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 있음
  • 권력과 의존 관계: 가해자에게 의존하는 관계일 경우 계속 접촉을 유지할 수 있음
  • 트라우마 본딩: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심리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현상

 

아동·청소년의 특수성

특히 아동·청소년 피해자의 경우, 성인과 다른 판단력과 대응 방식을 보입니다. 14세 소년이 가해자의 집을 다시 찾아간 것은 성인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아동·청소년의 인지적, 정서적 발달 단계를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한 행동입니다. 아동·청소년은 위험을 인식하고 대처하는 능력이 아직 완전히 발달하지 않았으며, 복잡한 감정과 상황을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판결의 의미: 법정에서 깨진 고정관념

이 판결은 단순히 한 사건의 유무죄를 가리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와 법원이 성범죄 피해자, 특히 아동·청소년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각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의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이 판결이 가지는 중요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 고정관념 타파: ‘피해자다움’이라는 잘못된 고정관념이 법적 판단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원칙 확립
  • 피해자 진술 평가의 새로운 기준: 피해자의 행동보다 진술 자체의 일관성, 구체성, 객관적 증거와의 부합 여부에 초점을 맞춰야 함
  • 아동·청소년 보호 강화: 미성년 피해자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그들의 진술을 더욱 신중하게 평가해야 함

 

앞으로의 과제: 여전히 남아있는 ‘피해자다움’의 그림자

2020도8016 판례는 법정에서 ‘피해자다움’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중요한 첫걸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는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편견이 남아있습니다. “왜 소리치지 않았나?”, “왜 즉시 도망가지 않았나?”, “왜 바로 신고하지 않았나?” 같은 질문들이 피해자를 두 번 다치게 하고 있습니다.

 

이 판례는 피해자의 행동이 아니라 가해자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성범죄 피해자, 특히 아동·청소년 피해자들의 다양한 반응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법적, 사회적 환경이 필요합니다.

 

결론: 진정한 피해자 보호를 향해

2020도8016 판례는 성범죄, 특히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다움’이라는 잘못된 관념이 아닌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으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평가해야 한다는 중요한 원칙을 확립했습니다. 법원은 피해자가 보이는 다양한 반응과 행동이 그 자체로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명확히 판단했습니다.

 

이 판결은 단순히 한 사건의 결론을 넘어, 우리 사회가 성범죄 피해자, 특히 취약한 아동·청소년 피해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이정표를 제시했습니다. 진정한 정의는 피해자가 ‘피해자답게’ 행동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 행위 자체의 존재 여부와 그 심각성에 초점을 맞출 때 실현될 수 있습니다.

 

Scroll to Top